분명히 피곤한데 왜 잠은 안 올까 [정신의학신문]
30대 남성이 진료실에 들어옵니다. 훤칠한 얼굴 복장 등으로 볼 때 좋은 직장에 다닐 법한 느낌인데요. 표정은 피곤함에 지쳐 보였습니다.
불그스름한 얼굴색으로 볼 때 평소 술도 많이 마시는 듯합니다. 그는 “최근 잠을 도통 잘 수 없다.라고 털어놨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이 들 것 같은데 침대에만 누우면 말똥해지고 새벽이 돼서야 잠이 든다고요. 결국 3시간 도 못 자고 다시 회사에 갈 준비를 하게 됩니다.
술을 마시면 조금은 일찍 잠드는 것 같아 일부러 회식을 찾습니다. 일을 마치면 녹초가 돼 평소 하던 운동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주말에는 밀린 잠 을 잡니다. 늦잠을 잤으니 밤에 잠이 올 리 없습니다. 그럼 혼자 술을 마시면서 스 마트폰이나 TV를 보며 밤을 지새우고 새벽에 잠듭니다.
“3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 리듬이 무너지진 않았어요. 원래는 아침형 인간이라 회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영화나 책을 보다 일찍 잠이 들고 아침에는 운동하고 회사 에 출근할 정도였어요. 큰 프로젝트가 있어 한 달가량 주말도 없이 야근한 이후부터 이후부터 이렇게 되버린 것 같아요."
♦ 우리 몸의 리듬을 지키는 멜라토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일상의 리듬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일에 치여서일 수도 있고 잦은 출장 때문일 수도 있고 낮밤 교대근무를 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연말 연초가 돼 술자리가 많아지면 또 그렇습니다. 코로나19 탓에 회식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거나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으면서 생활 리듬 이 무너져 내립니다.
우리 신체에서 일정하게 조절하는 생활 리듬을 일주기 리듬이라고 합니다. 생물 학적으로 뇌 안의 호르몬인 멜라토닌에 의해 조절됩니다. 멜라토닌은 미간 안쪽의 송과체라는 부위에서 분비되는데 저녁 무렵부터 시작해 새벽 무렵 가장 높은 수치 를 보이다 아침이 되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멜라토닌 분비가 건강한 사람은 늦은 저녁에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해 새벽까지 깊은 잠을 자다 아침이 되면 개운하게 깨 어납니다. 멜라토닌 분비가 건강할수록 생활 리듬이 잡힌 균형 있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신체의 순수한 일주기 리듬은 24시간보다 조금 더 깁니다. 대략 24시간 10분 가량입니다.
순전히 생물학적 시간으로 따지면 우리는 매일 10분 정도씩 생활 리 듬이 뒤로 밀려갈 겁니다. 지구가 24시간 태양을 공전하는 시간과 우리 몸의 일주 기 리듬이 살짝 차이 나기 때문에 두 개의 시계를 서로 맞추는 게 필요하죠. 그래서 우리 몸은 눈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해 멜라토닌의 분비를 조절합니다.
빛이 눈 안으로 들어오면 송과체의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하루 중의 일조량에 맞춰 우리 몸의 일주기 리듬을 맞추게 돼 있습니다. 만약 빛이 전혀 없는 동굴과 같은 곳에서 지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의 생물 학적으로 가지는 일주기 리듬대로 잠을 자는 시간은 매일 10~15분씩 늦어집니다. 두 달 정도가 지나고 나면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게 되겠죠. 물론 어두컴컴한 공간이기 때문에 낮과 밤을 구분할 순 없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잠을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자는 건 수월하지만 평소보다 일찍 자려고 하면 힘이 듭니다.
저녁형 인 간이 되기는 쉽지만 아침형 인간이 되기는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최근 우리는 대부분 멜라토닌 분비가 엉망진창이 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선 밤에도 밝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고 늦은 시간에도 TV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우리 눈에 밝은 빛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당연히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하죠. 이로 인해 대도시에 사는 현대인 대다수가 멜라토닌 분비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잠이 들기 힘들고 잠이 들더라도 얕은 잠을 자게 됩니다. 멜라토닌이 저녁에 분비됐다가 밤중에 끊겼다가 새벽에 다시 분비되기도 합니다.
자다가 깼을 때 스마트폰을 보는 버릇이 있으면 이런 패턴을 만듭니다. 밤중에 눈 에 빛이 들어가다 보니 그 시간대의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돼서지요. 이렇게 되면 저녁에 잠을 잠깐 잤다가 밤이 되면 깨고 새벽녘에서야 다시 조금 자게 됩니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일상 리듬이 깨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회 활동은 생활 리듬을 흐트러뜨리는 다른 원인입니다. 활발한 신체활동도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합니다. 밤늦은 시간의 운동이나 야근 술자리 등의 활동은 적절하게 분비돼야 하는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해 일주기 리듬을 깨뜨립니다. 특히 불규칙한 사회활동이 일정 기간 반복되면 그 영향은 더 커집니다.
앞서 진료 를 보러 온 30대 남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리의 생활 리듬이 깨져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회적 활동을 하는 주중과 쉬어도 되는 주말 동안의 수면 패턴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 어 평일 주중에는 새벽 1시 무렵 잠을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나지만 주말에는 비슷한 시간에 자고 낮 12시 무렵 일어나고 있다고 칩시다. 이런 경우에는 멜라토닌 분비는 뒤로 밀려 있는 저녁형이며 평일에는 사회활동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나고 있는 셈입니다.
생활 리듬이 깨져 버렸다면 그 원인을 찾아 없애는 것이 우선입니다. 밤늦게 혹은 자다가 깼을 때 TV나 스마트폰을 본다면 이 버릇부터 중단해야 합니다. 잠을 자기 위해 밤에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늦게까지 술을 마신다면 생활 리듬이 깨지는 건 당연합니다.
가능하다면 업무가 많더라도 밤늦게 야근하고 아침 늦게 출근하기보다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균등하게 업무를 보고 밤에는 휴식을 취하는 게 좋습니다. 내 삶의 리듬을 깨뜨릴 만한 요인을 최소화하려 노력하는 겁니다
♦ 아침 산책운동으로 건강한 일주기 리듬을 찾아라 그렇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생활 리듬이 어쩔 수 없이 깨져 버릴 때가 있습니다. 단기간에 일이나 공부를 몰아쳐서 해야 할 때가 있고 늦은 술자리를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깨져버린 생활 리듬을 제자리로 맞추기 위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주기 리듬의 시간대와 사회생활을 위한 시간대를 서로 맞추는 겁니다. 이건 고정할 기준 을 먼저 정해야 합니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일주기 리듬에 사회적인 시간을 맞추면 됩니다. 저녁형 인간이라면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 서 저녁형 시간대에 맞춰 사는 식입니다.
그런데 자유로운 출퇴근을 하기가 쉽지 않죠. 대부분은 사회적 시간대에 나의 일주 기 리듬을 맞추어야 합니다. 나의 일주기 리듬은 아침형이고 사회적 시간대는 저녁 형인 경우 이를 맞추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일주기 리듬은 24시간보다 길어서 뒤 로 미루는 건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문제는 반대 상황에서 생깁니다. 사회 적 시간대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는데 자신의 일주기 리듬은 저녁형인 경우이지요. 일주기 리듬을 앞으로 당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방법을 찾는다면 우선 밤 시간대에 TV나 스마트폰 화면을 보거나 신체활동 을 하는 걸 최대한 줄여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반면 아침 시간 에는 밝은 햇빛을 받으며 산책하거나 운동을 해서 아침 시간대의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합니다. 꾸준히 이런 노력을 하다 보면 조금씩 일주기 리듬이 앞으로 당겨 옵 니다. 물론 말이 쉽지 행동으로 옮기려면 상당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일주기 리듬을 수월하게 조절하기 위해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멜라토 닌 약이 대표적이죠. 실제 미국 등에서는 마트나 약국에서 영양제처럼 멜라토닌 약 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멜라토닌 약은 뇌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과 같은 물질이라 부족한 멜라토닌을 보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멜라토닌은 분해가 빠른 불안정한 물질이라 반감기몸 안에서 물질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가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약을 먹고 12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분해되어 약효가 없어집니다. 그러 므로 해외에서 영양제처럼 나오는 멜라토닌은 생활 리듬을 잡는 데 별 효과가 없습 니다
물론 의학은 이런 멜라토닌의 한계를 극복하긴 했습니다. 멜라토닌에 코팅을 어러 겹 씌운 약제를 만들어 알약이 위장을 지나면서 멜라토닌이 지속적으로 흡수되도록 만들었습니다. 화학적으로 합성을 해서 분해 시간이 긴 멜라토닌 유사체를 만들기 도 했습니다. 의사의 진료를 통해 사용한다면 이런 약은 무너진 생활 리듬을 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멜라토닌 약은 수면 패턴을 잡아 주는 약이기 때문에 효과를 얻으려면 불규칙적으 로 먹기보다 일정한 시간(주로 목표 입면 한시간 전)에 일정 기간동안 계속 먹어야 합니다. 약도 생활 리듬을 잡으려면 꾸준함이 있어야 합니다. 약의 도움을 받 더라도 그 리듬을 지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생활 습관을 지키려는 꾸준함 도 필수입니다.
[출처]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2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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